작성일
2018.02.23
수정일
2018.02.23
작성자
송성수
조회수
1132

에너지 보존 법칙의 삼총사

올해(2018년)에는 <세계일보>의 "사이언스프리즘"을 통해 과학칼럼을 쓰게 되었습니다. 첫번째 것으로 2월 8일에 게재된 칼럼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사이언스프리즘] ‘에너지 보존 법칙’의 삼총사

英 제임스 줄 獨 마이어·헬름홀츠
같은 시기 ‘에너지 보존 법칙’ 발견
과학적 발견은 개인 천재성보다
당시 이뤄진 조건에 더 영향 받아

2018년은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줄이 탄생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는 열역학 제1법칙으로 불리는 ‘에너지 보존 법칙’을 발견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에너지 보존 법칙은 여러 과학 분야를 아우르는 기본 법칙이자 일반인에게도 비교적 친숙한 법칙에 해당한다.

에너지 보존 법칙에 따르면, 어떤 계(system)의 에너지는 그 형태는 달라질 수 있지만 그 총량은 보존된다. 열기관을 활용해 기계를 작동시키는 경우 열에너지가 역학적 에너지로 바뀌기는 하지만 두 에너지를 합한 양은 일정한 것이다. 이처럼 에너지는 변환될 뿐 갑자기 생겨나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줄은 열의 일당량, 즉 1칼로리의 열에 해당하는 일의 양을 측정하는 문제에 매달렸다. 이 문제를 푸는 데 적어도 7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줄이 측정한 열의 일당량은 1843년의 770피트파운드에서 시작한 후 1844년의 798피트파운드와 1845년의 819피트파운드를 거쳐 1850년에는 772.692피트파운드(오늘날로 환산하면 약 4.16줄)가 됐다. 20세기에 들어와 열의 일당량은 약 4.18줄로 수정됐지만, 19세기의 실험 수준을 감안하면 4.16줄도 정확도가 매우 높은 값이었다.

줄의 집안이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양조장과 과학은 별다른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정반대였다. 당시의 양조장은 대량의 액체나 기체를 다루는 엔진이 설치돼 있는 보기 드문 공간이었다. 게다가 줄은 양조장에서 오랫동안 일했기에 측정의 문제를 매우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덕분에 그는 온도계 눈금의 20분의 1까지 읽어낼 정도로 매우 세밀한 측정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줄과 비슷한 시기에 로버트 마이어와 헤르만 폰 헬름홀츠도 에너지 보존 법칙에 도달했다. 독일의 의사인 마이어는 열대 지방에서 근무하던 중에 열대인의 정맥피가 유럽인보다 훨씬 빨간 것에 주목했다. 사람이 음식물을 섭취하면 그것이 산소와 반응해서 열을 발생시키고 그 열이 다시 역학적 일로 소모되는데, 역학적 일의 소모가 적은 열대인의 경우에는 정맥피 속에 산소가 더 남아 있어 정맥피가 보다 빨갛게 된다. 이러한 관찰을 바탕으로 마이어는 1842년에 화학적 에너지, 열에너지, 역학적 에너지 등이 서로 같은 종류의 물리적 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독일의 과학자인 헬름홀츠는 줄과 마이어의 업적을 인지하면서 보다 보편적인 원리를 추구했다. 헬름홀츠는 1847년에 일련의 실험을 통해 동물의 열이 별도의 생명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음식물의 화학적 에너지에 의해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에너지 보존 법칙을 명료하게 선언하면서 수학적으로 정식화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헬름홀츠는 에너지 보존 법칙이 줄과 마이어에 의해 이미 발견됐다는 점도 언급했다.

에너지 보존 법칙은 ‘동시발견’ 혹은 ‘복수발견’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에 대해 유명한 과학사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토머스 쿤은 1830∼50년에 에너지 보존의 원리를 표방했던 사람이 적어도 12명이라고 지적하면서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과학적·기술적·사상적 배경에 주목한 바 있다. 당시에는 다양한 변환과정에 대한 과학적 논의가 본격화됐고, 증기기관의 열효율을 개선하기 위한 작업이 다각도로 추진됐으며, 모든 자연현상에 적용되는 하나의 원리를 추구하는 자연철학주의가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과학 사회학의 창시자로 평가되는 로버트 머튼은 ‘단독발견이 아닌 동시발견이 과학적 발견의 보편적인 유형’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우리는 어떤 역사적 사실을 두고 ‘시기가 무르익었다’는 말을 자주 쓰는데 머튼은 이를 과학적 발견에도 적용한 셈이다.

사실상 과학적 발견이 개인의 천재성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는 생각은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적 발견은 해당 시기까지 이루어진 과학 내부와 외부의 조건에 의해 상당한 규정을 받는다. 과학의 역사에서 적지 않은 발견이 동시발견이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점을 웅변해 주고 있다.

송성수 부산대 교수 한국과학기술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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