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7.04.21
수정일
2017.04.21
작성자
송성수
조회수
430

과학과 종교를 보는 시각

<기장군보> 2016년 8월 1일자에 실린 인문학 칼럼입니다.

과학과 종교를 보는 시각
송성수(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과학기술사)

아직도 과학과 종교를 적대적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제법 존재한다. 하지만 과학과 종교를 보는 다른 시각도 있다. 과학과 종교는 적일수도 있지만, 남남일수도 있고, 친구일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상 과학의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학과 종교에 관한 역사적 사건을 특정한 관점으로 재단하는 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과학과 종교의 관계가 변화해 온 역사적 양상도 포착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13세기, 17세기, 19세기, 20세기의 네 국면을 통해 과학과 기독교의 관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흔히 중세는 과학의 암흑기로 평가되고 있다. 기독교가 사회를 조직하는 지배적인 원리가 되면서 과학과 같은 세속학문은 기독교의 시녀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과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사라지지 않았고, 이에 대해 교회 당국은 몇 차례의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가장 강력한 금지령은 1277년에 있었는데,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 중에서 기독교 교리와 충돌하는 사항을 조목조목 거론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의 학자들이 자연현상의 원인을 따지거나 실재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매우 어려워졌다. 그들은 자연현상을 정확히 서술하는 데 초점을 두거나 ‘상상해 의하면’이란 단서를 달고 자연현상을 다루어야 했다.

16-17세기에는 유럽에서 근대과학이 탄생했으며, 역사가들은 이를 ‘과학혁명’으로 부른다. 이 시기에 과학과 종교에 관한 유명한 사건으로는 1633년에 있었던 갈릴레오 재판을 들 수 있다. 그 사건은 기독교가 지배적이었던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지만, 갈릴레오가 가졌던 기독교에 대한 태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성경이 제대로 해석되기만 하면 자신이 옹호하는 태양중심설과 아무런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사실상 당시의 많은 과학자들은 신이 자연의 법칙을 창조했으며 그 법칙에 따라 자연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당시에 기독교에 대한 신앙이 과학 탐구에 대한 적극적인 동기를 제공하는 일은 드물었다. 많은 경우에 과학자들은 자신의 활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종교적 믿음을 활용하는 경향을 보였던 것이다.

19세기에는 다윈의 진화론이 도마 위에 올랐다. 1859년에 <종의 기원>이 발간된 직후에는 진화론자과 창조론자 사이에 상당한 대립이 있었다. 하지만 1875년이 되면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기독교 신자이건 아니건 간에 진화가 사실임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특히, 진보적 성직자들은 성경을 글자 그대로 옹호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진화론을 비롯한 새로운 과학을 비교적 쉽게 수용할 수 있었다. 물론 간헐적인 논쟁은 있었지만 1900년이 되면 진화론과 창조론의 갈등이 더 이상 뜨거운 문제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과학이 다루는 영역과 종교가 다루는 영역이 서로 다르다는 판단에 입각하고 있었다. 종교는 마음이나 양심과 같은 내적 증거를 다루며, 자연의 외적 증거는 더 이상 종교의 영역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었다.

20세기는 그야말로 과학의 시대였다. 서양 사회에서 지배적인 문화는 기독교문화에서 과학문화로 바뀌었다. 1925년에 미국 테네시 주에서 있었던 스콥스 재판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과학이 지배적인 사회가 되면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반격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교육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던 것이다. 이어 1960년대에는 창조과학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는데, 창조과학은 성경에 기록된 역사가 과학적 사실이라는 것을 밝히려는 시도에 해당한다. 과학과 종교가 한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역전되면서 이제는 종교가 과학을 닮으려는 양상이 나타난 것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오늘날에는 과학이 중세 시절의 종교가 되어 다른 영역의 가치를 폄하하는 현상도 목격할 수 있다.

이처럼 과학과 종교의 관계는 역사적 시기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였다. 13세기만 해도 과학은 종교의 시녀에 지나지 않았으며, 17세기에 종교는 과학 탐구를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19세기에는 과학과 종교가 서로 대등한 지위를 누리게 되었고, 20세기가 되면 종교의 과학적 근거를 찾으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와 같은 논의는 과학과 종교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변화하는 문화적 활동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러한 시각을 취하게 되면, 과학을 지나치게 신봉하는 과학주의나 과학을 턱없이 무시하는 종교적 근본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실상 과학과 종교는 지속적으로 공존해 왔으며, 앞으로도 다양한 접점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아직도 과학과 종교를 적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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